당신은 딸기 케익 위에 올려진 딸기를 제일 먼저 먹는가, 아니면 가장 마지막에 먹는가.
츠키시마는 단언컨데 후자였다. 딸기 케익의 전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딸기는 유혹적인 붉은 색을 띄고 있으며 모양마저 탐스럽기 그지없다. 어린 츠키시마는 야금야금 케익을 먹으면서도 눈은 항상 위에 올려진 딸기를 바라보았다. 케익을 다 먹은 후, 남은 딸기를 입에 넣고 씹는 순간 터지는 그 달큰함은 충분한 기다림의 보상이 되었다. 츠키시마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기다림의 보상은 어린 츠키시마에게 있어 강렬하게 각인되었고 어느새 버릇처럼 굳어버렸다. 가장 좋은건 두고두고 기다렸다 마지막에 먹게 되었다. 츠키시마는 다 비어버린 접시 위에 홀로 남은 딸기를 포크에 찍어 바라보았다.
딸기는 오늘도 붉고 탐스러웠다.
츠키시마가 처음 히나타를 봤을 때에는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바보라고만 생각했다. 때 지난 소년만화에나 나오는 것 같은 열혈에 바보. 취향도 성격도 그 어느것 하나 맞지 않았다. 자신과 히나타는 자석의 N과 S극 같았다. 앞으로도 같은 배구부원, 그 이상의 관계는 될 것 같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히나타와 부딪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츠키시마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히나타 쇼요는 아주 잘 익은 새빨간 딸기였다.
딸기는 가장 나중에 먹는 것.
츠키시마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안경을 사이에 두고 히나타를 천천히 훑었다. 히나타는 오늘도 무슨 바보같은 일 때문인지 카게야마와 빽빽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시끄럽다고 눈쌀을 찌푸렸겠지만 자신은 저것이 딸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딸기는 마치 모난 오렌지인 것 처럼 위장하고 있어서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저게 딸기인지 알지 못한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딸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지막에 먹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 츠키시마는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일은 언제나 방심한 틈을 타서 벌어진다.
츠키시마는 보이지 않게 볼 안쪽을 깨물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합숙경기를 한다며 나타나서는 대뜸 히나타와 인사를 나누는 키작은 세터. 보는 순간 고양이가 생각나는 외모답게 하는짓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용히 구석진 곳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는 그 눈에서 히나타를 빼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나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켄마 옆에 찰싹 붙어서는 연신 방방 뛰어댔다. 거기에 더 마음에 안드는건 토스를 올려달라며 달라붙는 녀석을 귀찮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부 받아주고 있는 켄마의 태도였다.
"어이, 히나타. 타케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좀 오라던데."
"으억? 나 잘못한거 있나..."
교무실이란 소리에 대번에 울상을 지으며 히나타의 어깨가 바닥을 향해 쭈그러 들었다. 그리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다녀올게, 켄마 하고 말하고는 터덜터덜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히나타의 모습이 보이지않게 되자 조금 기분이 상쾌해진것도 같았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켄마의 목소리가 츠키시마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유치하네."
높낮이 없이 평이한 어조, 낮은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움이 존재했다. 그동안 눈치없는 카라스노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츠키시마는 조금 놀란 눈초리로 켄마를 바라보았다. 무덤덤한 노란 고양이 눈동자에 츠키시마의 얼굴 보였다.
기분나빠. 츠키시마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속내를 꿰둟힌 기분이었다.
"그쪽이 신경 쓸 일 아닌것 같은데요."
츠키시마는 조금 날이 선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오늘부터 고양이가 매우 싫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속마음을 읽히는 편이 아니다보니 낯선 이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혹시 좋아하는건 나중에 먹는 타입...?"
다시 켄마의 목소리가 츠키시마를 붙잡았다. 더이상 말 섞어봐야 츠키시마는 얻을 것이 없었다. 기껏 해야 울화나 짜증정도였다. 무시하는게 상책이지, 츠키시마는 켄마의 말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켄마가 작게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있었다.
"뭐죠?"
"뭐가...?"
"방금 웃은거 무슨 의미냐고 물은겁니다."
"별 뜻은 없어. 그냥, 고마워서...?"
영문 모를 켄마의 대답에 츠키시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꾸만 사람을 간 보듯이 구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화내고 따져봤자 저 얄미운 고양이는 또다시 꼬리를 슥 감추고는 내가 뭘? 하는 태도를 보일게 분명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더이상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키작은 켄마를 한껏 깔보듯 내려봐 주었다. 그리고는 슬쩍 입꼬리를 올려주자 계속 무표정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의 동공이 세로로 더 가늘어졌다.
"...난 먼저 먹거든. 기다려봤자 뺏기게 되니까."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시선이 맞물렸다.
마음에 안들어. 키도 작은 주제에 이쪽 사이즈에 주눅들만도 한데 아무런 미동없이 마주쳐 오는 눈동자가 거슬렸다.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시선만 마주치던 중 켄마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함께 시선을 돌리니 히나타가 돌아오고 있었다. 츠키시마에게 속았다며 잔뜩 분한 얼굴로 쿵쾅거리고 있었다.
켄마는 나직하게 히나타의 이름을 내뱉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히나타에게 다가갔다. 스스럼없이 히나타의 옆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에 또다시 짜증니 치밀었다. 히나타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던 켄마의 시선이 돌연, 츠키시마와 마주쳤다. 그리고는 츠키시마를 향해 소리없이 입술만 움직였다.
'잘 먹을게.'
뭐?
켄마는 처음으로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츠키시마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표정을 지운 채 히나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츠키시마는 손바닥 안쪽에 촉촉히 땀이 배여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위험신호였다. 도둑 고양이가 자신의 딸기를 노리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자신만이 알고있다고 믿었던 딸기를 다른 사람도 알고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걷잡을 수 없이 초조해졌다. 켄마는 부러 보란듯이 히나타에게 스킨쉽을 하며 츠키시마에게 시선을 보냈다.
명백한 전쟁 선포, 바야흐로 딸기전쟁의 시작이었다.
+
(2015.10.22)
뽀리 리퀘로 받은 츠키랑 켄마가 캣파이트 하는건데 암만봐도 캣파이트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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